중요문화재안남국 부도당 복의후 응우옌의 서간 안남국 문리후의 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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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통1폭
  • 종이에 묵서
  • 베트남 후여조
  • 규슈국립박물관
  • P14982, P14983

안남국 부도당 복의후 응우옌의 서간

 일본과 안남(현재의 베트남)이 교환한 외교문서 중,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 문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안남국 부도당 복의후 응우옌이 일본 국왕에게 서간을 보냅니다. 들은 바에 의하면, 신의란 나라의 보물이며,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해 일본 국왕의 사신인 진량산과 면회한 바에 따르면, 량산은 본국(안남국)에 대해, “일본 국왕은 우수한 코끼리를 좋아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코끼리 한 마리를 진량산에게 가져가게 하려고 하였으나, 귀국하는 배가 작아 코끼리를 실을 수 없었기에, 그 대신 우수한 향목 2점, 양산 1점, 상아 1점, 우수한 직물 2장를 국왕에게 보내, 신의를 지키고자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일본 국왕의 사신 융암이 본국을 찾아와 “진량산과 재물이 도착하지 않습니다”라고 하기에, 양산 1점을 다시 국왕에게 보내 신의를 지키려고 합니다. 만약 일본 국왕께서 안남국의 진기한 물건이 마음에 들어 융암을 다시 본국에 파견할 때, 일본의 우수한 검 2자루와 갑옷 1점을 저에게 보내 주시면, 저희도 희소품을 모아 일본 국왕께 보내, 양국 간의 왕래 교신의 의를 나누고자 합니다.’

 발신인은 안남(후여조)의 유력한 신하였던 응우옌으로 추측된다. 수신인은 ‘일본○국왕 좌하’(○은 궐자)로, 당시의 일본 천하를 지배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추측된다. 히데요시는 조선, 류큐(오키나와), 고사(현재의 타이완), 루손섬(필리핀)에 조공을 요구했고, 안남에도 같은 요구를 하여, 외교통상을 모색했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 문서에 등장하는 두 명의 사신에 대해 상세한 정보가 없는 점으로 보아, 일본 국왕의 이름을 사칭하여 안남과의 교역을 꾀한 중국 해상의 소행일 가능성도 있다.
 어찌되었든 이 문서는 후기 왜구 시대로부터 주인선(쇼군이의 주홍 인장이 들어간 공식 문서를 근거로 움직이는 교역선) 무역 시대로 이어지는 과도기의 일본과 안남국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자료이며, 일본과 베트남의 교류에 있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10년을 더 거슬러 올라간 중요한 사료이다.


안남국 문리후의 서간

 이 서간은 안남국(베트남)의 문리후가 일본인 상인‘市良碧山伯等(읽는 소리 불명)’에게 보낸 것이다. 발신인 문리후는 안남국의 무역항이 있는 응애안 지역을 관리하고 있던 것으로 보이는 관리로, ‘진정(陳靖)’이란 인물이다. ‘市良碧山伯等’이라는 이름 표기는, ‘이치로(市良, 市郎)’라는 이름인지, 또는 복수의 이름을 표시하려고 했는지 분명치 않다.
 ‘市良碧山伯等’은, 1609년 주인선(쇼군의 주홍 인장이 들어간 공식 문서 ‘주인장’을 근거로 움직이는 교역선))의 무역인 스미노쿠라 소안의 배를 타고, 안남국 응애안 지역으로 출항했다. 그 후 일본으로 귀국 도중, 단애 해엽 앞바다에서 난파하여 선원 105명이 조난했다. 먼 타국 상인들이 굶주리는 것을 불쌍히 여겨, 안남국 국왕이 안남국의 귀족 서군공, 문리후, 광부후에게 조난자 105명을 분담하여 부양토록 명했다. 또 귀족들이 국왕에게 청하여, 조난자들에게 식량과 옷, 큰 배가 지급되었다. 이 서간에는 이와 같은 경위가 적혀있다.
 ‘市良碧山伯等’이 안남국으로 향한 1609년, 일본에서 베트남 중부 교지로의 출항을 허가하는 주인장 3통이 발급되었다. 이 서간은 일본과 베트남 간 주인선 무역이 활발했다는 점, 또 일본과 안남국 간 관계가 양호했다는 점을 증명하는 역사적 자료로서 주목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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