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노리쿠니명 대도(則国銘 太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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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자루
  • 날 길이 74.7cm 휨 정도 2.1cm
  • 교토국립박물관
  • E甲204

  일본 고대의 수공업은 나라 시대부터 헤이안시대 전반무렵까지 각 지방마다 어느 정도 자급자족의 단계를 거쳐 10세기경부터 차츰 각 지방의 특산품을 생산하게 되었다. 특히 부가가치가 높았던 공예품은 헤이안쿄(平安京)* 귀족 집안이나 사원 또는 신사에 부속된 공방과 장인들이 거주하던 지역 등에서 집중적으로 제작되어 전국에 유통되었다.
도검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교토의 산조(三条) 부근에는 칼 장인들이 많이 몰려 살았으며 이들은 나중에 산조파라고 불리웠다. 헤이안시대 말경에는 교토 히가시야마(東山)의 아와타구치(粟田口)에 살았던 구니토모(国友), 히사쿠니(久国), 구니야스(国安)의 3형제가 등장해 아와타구치파(粟田口派)로 이름을 떨쳤다. 이 대도의 제작자 노리쿠니(則国)는 구니토모의 아들이다.
이 대도는 손잡이 부분이 약간 짧은 편이며 그 끝부분에 ‘노리쿠니(則国)’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나고야(名古屋) 시의 아쓰타진구(熱田神宮) 신사에 소장된 대도와 함께 ‘노리쿠니(則国)’의 명문이 있는 매우 드문 유물이다.
칼폭은 좁고 칼날 끝부분(鋒)이 작으며 휘지 않은 형태로서 가마쿠라시대 초기에 지방에서 제작된 대도에 나타나는 공통된 특징을 갖고 있다. 칼 표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판자눈과 같이 생긴 무늬가 하얗게 보여 쇠를 두드려서 펴고 접는 담금질을 매우 정성들여 했음을 알 수 있다. 휘어지는 중심이 칼의 중간 부분에 있으며 벼리선이 품위있게 직선으로 곧게 뻗어 세직도(細直刃)라고 불리운다. 또한 벼리선 주변에 은 모래를 뿌려놓은 것같은 미세한 입자*가 보이는 등 교토에서 제작된 대도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운치가 물씬 풍기는 칼이다. 돗토리(鳥取) 지방 번주였던 이케다(池田) 집안에 전래되었던 것이다.

*헤이안쿄:지금의 교토의 중심부로 794년부터 1864년까지의 일본의 수도
*미세한 입자(沸, 니에):칼을 불에 달굴 때 생긴 현상으로 육안으로 분별할 수 있는 미립자. 한편 육안으로 분별할 수 없는 보다 미세한 입자는‘니오이(匂)’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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