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야오키미(長屋王) 왕이 707년(慶雲4) 6월15일에 돌아가신 몬무(文武) 천황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서사시켰던《대반야경(大般若経)》의 유품이다. 와동(和銅) 5년에 발원했기에 ‘와동경(和銅経)’으로 불린다. 근년 나가야오키미 왕 저택지의 발굴에 의해 발원문의 끝부분에 있는 ‘북궁(北宮)’은 나가야오키미 왕의 부인이며 몬무 천황의 여동생이기도 한 기비나이신노(吉備内親王, 草壁皇子의 딸)의 궁으로 추측되었다. 또한 ‘나가야오 전하(長屋殿下)’라는 표현도 부인인 기비나이신노 측에서 나온 표현으로 여겨져 이 ‘와동경’은 기비나이신노 부인의 뜻을 받아 나가야오키미 왕이 부인의 오빠인 몬무 천황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북궁’에서《대반야경》일부 600권을 서사시켰던 것으로 여겨진다.이 사경의 최대 특징은 행을 나누는 경계선이 그어져 있지 않는 즉 경계선이 없는 것이며 글씨의 모양은 글씨체가 조금 작고 필선에서도 서툼이 보인다. 또 경문 서사 후 함께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발원문은 중국의 남북조 시대부터 수시대에 걸친 수법으로서 본문보다 더 오래된 글씨풍인 점이 흥미깊다. 원래 600권 중에 이 다이헤이지(太平寺) 절에 142첩, 죠묘지(常明寺) 절에 27첩(국보), 겐쇼안(見性庵) 암자에 43첩(중요문화재)이 있으며 그밖에 세간에 흩어져 있는 것을 포함하면 220여권 정도가 현존하고 있는 것같다. 이 ‘와동경’은 경전번역 후 50년만에 이루어진 서사로 아마도《대반야경》중 가장 오래된 유품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