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 선조가 일본 모리 가문의 가신 ‘가야시마 기헤이’를 조선의 무관으로 임명하기 위해서 발급한 임명장 ‘고신’ 1통과 이에 관여한 경상도 관찰사 겸 순찰사 홍이상이 발급한 관련 문서 2통이다. 3통 모두 1594년 8월부터 10월에 걸쳐 발급되었다.
‘고신’은 선조가 기헤이를 무관으로 임명한 것으로, 4품 이상의 관료를 왕이 임명하는‘관교’ 양식의 문서다. 내용에 나오는‘折衝将軍(절충장군)’이란 무신 정3품 당상관이며, ‘龍驤衛(용양위)’는 조선의 군조직인 오위의 하나로, ‘上護軍(상호군)’이란 그 무관을 의미한다. 발급일 부분에는 15, 16세기의 관교 양식 문서에 사용했던 조선 왕의 도장인 ‘施命之寶 (시명지보)’가 찍혀 있다.
‘홍이상의 전령’은 조선 동래 지역의 교생 송창세에게 보낸 편지다. 송창생이 적이 처한 상황에 대해 보고하고 가야시마 기헤이를 조선 측에 투항하게 하는 등의 노력을 치하했다.
‘홍이상의 편지’는 가야시마 기헤이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편지가 써진 날짜는 임명으로부터 약 2개월 뒤로, 임명을 받았으면서도 태도를 분명히 밝히지 않는 기헤이에게 투항을 강하게 권하고 있다.
이 3통의 문서는 ‘임진왜란’의 화해 교섭이 한창인 중에 발급되었다. 조선을 포함하지 않은, 일본과 명나라 간 교섭이 교착 상태에 놓이자, 모리 가문 등 한반도 남해안에 ‘왜성’을 쌓아 주재한 일본 영주들의 수하에서는, 조선 측의 공작 등으로 도망치고 투항하는 일본인 병사의 ‘항왜’가 속출했다. <조선왕조실록>(선조실록)에는 이런 항왜와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어, 가야시마 기헤이와 이 3통의 문서에 관한 상세한 경위도 알 수 있다. 조선에 출병한 일본인 무장을 관직에 임명함으로써, 책략을 도모하는 조선 측의 동향을 알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자료다.
이 3통의 문서는 1930년대 초까지 가야시마 가문의 친척인 아와야 가문에 전해졌고, 규슈국립박물관에서는 이 외에 아와야 가문에 전해 내려온 근세 문서 4통을 함께, <조선 고신 관계 문서(P15012) 7통>이라는 이름으로 소장하게 되었다. 한편 이 3통의 문서 사본이 <하기번 벌열록> 제3에, 아와야 하치자에몬 가문의 문서로서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