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의 증상과 치료 모습을 모은 두루마리 그림의 단간이다. 각각 키가 너무 작아 사람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된 거지 법사 <난쟁이>, 등이 구부러져 아래만 보고 걸어야만 하는 거지 법사<꼽추 거지 법사>, 엉덩이에 구멍이 없어서 입으로 배설하는 남자 <대변을 토하는 남자>, 얼굴의 반점을 한탄하는 여자 <반점이 있는 여자>를 그렸다.
이 네그림을 포함한 <병초지>는 전체 15단으로, 쇼와 초기까지 1권의 두루마리 그림으로서 나고야의 세키도 가문에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같은 두루마리에 포함되었던 9 단은 교토국립박물관의 국보 <병초지>며, 나머지 2단은 단간이 되어 개인이 소유하고 있다.
이 그림들을 살펴보면, 그림은 한 사람이 아닌 여러 화가가 그린 것으로 추측되는데, 모두 강약이 있는 자유로운 묘선으로 대상을 정확하게 파악해, 적은 필치로 인물의 심정까지 절묘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 탁월한 묘사는 <반다이나곤 두루마리 그림(일본 국보, 도쿄·이데미쓰 미술관)>의 작가로도 알려진 궁정 화가 도키와 미쓰나가(생몰년 미상)의 것과 공통되며, 그 화풍을 이어받은 것으로서는 희소한 작품이다.
또 용모나 옷의 주름, 화초 등에서는 <지옥초지>와 <아귀초지>에 매우 가까운 표현을 발견할 수 있으며, <병초지> 또한 이 그림들과 마찬가지로 육도(六道)중 인도(人道)를 그린 육도회의 하나로, 12세기 말에 고시라카와 상황(1127년-1192년)의 지도 하에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작품은, 최근 인도출신 불경 번역 승려 반야루지가 번역한「정법염처경」에 근거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병초지>가 육도회로 더욱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러나 경전을 단순히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고, 경전의 서술에 얽매이지 않는 부분, 즉 병자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 건강한 사람과 병자와의 대비를 명백히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 제작을 기획한 고시라카와 상황의 권력자로서의 의도가 크게 작용했다고 지적되고 있다.
모두 단간이긴 하나, 뛰어난 작풍은 도키와 미쓰나가의 양식을 전하며, 12세기 말에 궁정에서 제작된 두루마리 그림의 취향을 잘 나타내고 있다. 불교 회화라는 틀을 뛰어넘는, 일본 헤이안시대 후기를 대표하는 명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