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야마시대 말기부터 에도시대 초기에 걸쳐 활약한 다와라야 소타쓰(俵屋宗達)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소타쓰는 겐닌지(建仁寺) 절 소장 <풍신뇌신도(風神雷神圖) 병풍>과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학 밑그림 와카 두루마리(鶴圖下繪和歌卷)>처럼 금과 은 그리고 물감을 사용한 매우 장식성 높은 작품을 많이 남긴 한편, 동양적 정취가 넘치는 수묵화도 다수 제작하였다.
수묵 기법을 구사한 이 그림은 예로부터 소타쓰의 수묵화 가운데 최고 걸작으로 손꼽힌 동시에 일본 수묵화의 역사에서도 위대한 성과 중 하나로 널리 인정받아 왔다.
소타쓰의 작품으로 알려진 수묵화 가운데 연꽃과 논병아리를 모티프로 한 작품 몇 점이 현재까지 남아있는데, 그중에서도 이 그림이 가장 뛰어난 솜씨를 보여준다. 종이와 먹의 미묘한 관계를 잘 인지하고 있는 화가가 자신의 화가 인생에서 가장 충실했던 시기에 완성한 작품이라는 사실은 소타쓰의 다른 수묵화와 비교해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에도시대 후기 소타쓰와 오가타 고린(尾形光琳)의 재평가 운동을 벌였던 사카이 호이쓰(酒井抱一)는 이 그림에 감동한 나머지 표구함에 ‘소다쓰 작품 가운데 절품(宗達中絶品也)’이라고 적어 놓았다.
왼편 아래에 찍힌 ‘伊年(윤년)’이라고 읽는 붉은색 원형 도장은 훗날 소타쓰가 경영했던 공방의 상호로 쓰인 것으로, 현재 다양한 종류의 ‘윤년’ 인장이 찍힌 작품이 전하는 가운데 이 그림이 가장 뛰어나다.
소타쓰의 생몰 연대는 확실한 자료가 없어 단정할 수 없다. 1615년경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과거 오쿠라(大倉) 집안이 소장했던 <연꽃 밑그림 백인일수(蓮下繪百人一首)> 속 연꽃 묘사가 이 그림과 매우 유사한 점으로 보아 이 무렵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 이 시기는 소타쓰가 한창 기력이 왕성하고 기술적으로 완벽한 장년기였을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