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금광명경(金光明經) 권 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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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권
  • 종이에 먹그림과 먹글씨
  • 세로 25.0cm 길이 827.0cm
  • 가마쿠라시대 12세기
  • 교토국립박물관
  • A甲260

먹으로 선만을 그린 백묘 상태의 모노가타리에(物語繪)* 위에 호국 경전 《금광명경(金光明經)》 권 제3을 필사한 두루마리 경전. 헤이안시대 후기에 많이 제작된 장식경(装飾經)의 한 예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밑그림은 애초부터 경전을 장식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니라 제작이 중단된 고전 소설[物語]의 두루마리 그림을 경전 필사용 종이로 재사용한 것이다. 그림 속 대부분의 인물에 눈과 코가 그려지지 않은 점에서 “목무경(目無經)”이라고 불린다. 1권이 완전하게 남아있는 “목무경”은 진코인(神光院) 절에 전해오는 교토국립박물관본과 《이취경(理趣經)》(다이토큐기념문고 소장)뿐으로 그 외에는 단간 형태로 전해온다.

《이취경(理趣經)》의 간기에 따르면 고시라카와 법황(後白河院, 1127~1192)의 주도 아래 모노가타리에 제작을 추진해왔는데 상황이 세상을 뜨면서 제작이 중단되었고 고인을 공양하고자 그 서화 종이를 활용하여 경전을 필사했다는 경위를 명확히 알 수 있다. 게다가 교토국립박물관본의 간기에는 “겐큐 3년 4월 1일 서사[建久三年四月一日書寫之]”라는 기록이 있어 상황이 세상을 뜬 3월 13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필사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림은 저택 내부(邸內)를 무대로 했으며 지붕과 천장을 그리지 않고 부감하여 묘사하는 ‘후키누키야타이(吹拔屋台)’ 수법으로 그렸다. 이야기의 제재는 《아리아케의 이별[有明の別]》*이나 《겐지 이야기[源氏物語]》 등 여러 설이 제기되나 순서와 상관없이 종이를 이어 붙였고 밑그림 또한 전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내용을 단정 지을 수 없다.

당시 모노가타리에를 제작할 때는 먼저 먹선으로 밑그림을 그린 다음 채색을 하는데 채색으로 가려진 윤곽선을 먹으로 다시 살려내는 단계를 거쳤다. 이 밑그림은 그러한 두루마리 그림의 제작 과정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작품이다.


*모노가타리에(物語繪): 고전 소설[物語] 속 장면이나 인물을 그린 그림
*아리아케의 이별: 몸이 보이지 않게 되는 도롱이를 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고전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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