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유신 후, 세간에 잘 알려진 폐불훼석 사건으로 사원의 고미술과 보물이 문자 그대로 파괴되었으며 빈궁한 무사와 대명가(大名家)로부터 많은 「문화재」와「미술품」이 유출되었다. 이와 같은 사태로 인해 메이지 정부는 메이지 4년(1871)에 일본 최초로 문화재 보호에 관한 법령인 「고기구물(古器舊物)보존법」이라는 포고를 내렸다. 이 포고를 받고 메이지 5년에 나라와 교토, 시가, 미에 등의 오랜 신사와 절을 중심으로 한 보물 조사가 실시되었으며, 그 조사는 간지에 따라 「임신년 검사」라 불린다.
도쿄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임신년 검사 관계자료」는 그 당시의 기록류로 조사부와 실물 탁본, 모사 등으로 이루어진다. 임신년 검사는 문부성으로부터 파견된 마치다 히사나리(1838~97, 후에 초대 박물관 관장)를 총 책임자로 하여, 우치다 마사오(1838~76), 니나가와 노리타네(1835~82) 등 다이조칸 직원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8월 12일에는 칙사와 함께 쇼소인을 개봉하고 촬영•모사•탁본의 채취 등을 실시했다. 23일에 폐봉될 때까지 그들은 수행원이었던 화가 가시와기 가이치로(마사노리, 1841~98)와 사진가인 요코야마 마쓰사부로(1838~84) 등과 함께 자비로 보물들을 기록했던 것이다. 특히 니나가와는 다양한 각도에서 쇼소인 보물의 탁본을 떴다. 대상에 따라 건탁과 습탁으로 나누어, 현재에도 선명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의 이와 같은 문화재 조사는 도쿄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구 에도성 사진첩」(중요문화재) 제작 시의 경험을 충분히 살린 것이다.
도쿄국립박물관에는 이 외에도 임신년 검사 때의 사진들이 다수 남아 있으며 이 사진들도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