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길고 조금은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는 상으로, 보관도 완전한 3면 두식이 아닌 7세기 전반의 작품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삼산관(三山冠)과 비슷하다. 하지만 눈에 쌍꺼풀이 지게 한 점과 흐르는 듯 늘어뜨린 천의의 부드러운 표현은 7세기 후반의 작품들과 닮아, 과도기적인 시기의 작품으로도 추정할 수 있다.
본체와 대좌 연밥을 한 덩어리로 주조하였지만, 왼손은 따로 주조하였다. 가슴까지 내부는 비어있으며 두께는 약간 두꺼운 편으로 전체적으로 거의 균일하다. 배와 뒷면의 허리 부분 아래쪽에 각각 방형의 형지(型持)가 설치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기포가 남아있지만 주조 상태는 양호하다. 또한 현재는 그 대부분이 없어졌으나 원래는 연밥 아래쪽 가장자리가 통 모양으로 길며, 거기에 홈을 파서 7곳에 촉 같은 것을 만든 흔적이 있다. 연밥과 그 아래쪽 대좌를 고정시키기 위한 사양으로 여겨지는데, 그 유례를 다른 곳에서는 별로 찾아볼 수 없다. 보관의 뒷면과 두발을 제외한 거의 전면에 도금이 남아있으며, 두발에 군청색, 입술에 주홍색(혹은 벵갈라)을 칠하고, 눈썹과 눈의 윤곽, 눈동자에는 먹을 그려 넣었다. 현재의 대좌 복련 이하는 목조 칠박으로 만들어졌으며 에도 시대에 후보(後補)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