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金剛般若経開題残巻〈弘法大師筆/(三十八行)〉
- 쿠카이 필
- 1권
- 종이에 묵서 두루마리
- 세로 28.1 길이 131.8
- 헤이안 시대(9세기)
- 나라국립박물관
- 649(書19)
쿠카이(空海, 774~835)가 인도 등지에서 불교 경전을 가지고 돌아와 경전 번역에 종사한 중국 승려 의정(義淨, 635~713)의 『능단금강반야경(能斷金剛般若經)』을 밀교의 입장에서 풀이한 것이다. 개제(開題)란 경전 제목을 설명하고 그 대략적인 내용을 풀이한 것이다.
『금강반야경』을 한문으로 번역한 것은 모두 여섯 종류가 있다. 그중 인도 출신 승려 구마라습(鳩摩羅什, 344~413 또는 350~409)이 번역한 경전이 많이 인용되나 쿠카이는 의정의 번역본을 활용하였다. 중국 당나라(618~907)에는 『금강반야경』가 널리 신앙되면서 그 영험기(靈驗記, 신비로운 감응과 이익 등을 적은 책)인 『금강반야집험기(金剛般若集驗氣)』도 편찬되었다. 일본에서도 이미 나라 시대(710~794)에 관영 사경소(寫經所)에서 대량으로 『금강반야경』을 필사하였다. 그러나 헤이안 시대(794~1185)에 이르러 『금강반야경』을 향한 신앙이 더욱이 확산되면서 중국에서 가져온 『금강반야집험기』의 설화가 『일본영이기(日本靈異記)』나 『금석물어집(今昔物語集)』에 수록되기도 하였다.
이 금강반야경 개제는 교토 다이고지(醍醐寺) 절의 산보인(三보院)에 전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찰 밖으로 유출된 후에는 뿔뿔이 흩어져 지금은 전체 가운데 약 150행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본 권은 38행으로 되었으며 일본 황실의 궁가(宮家)인 타카마츠미야(高松宮) 일족이 소장하고 있었다. 그밖에 교토국립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63행과 몇 개의 단편의 존재가 알려져 있다. 잔권과 단편의 앞부분과 이어지는 86행은 1923년에 일어난 관동대지진 때 일어난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다.
코닌 4년(813)년 10월에 고위 관료인 후지와라노 카도노마로(藤原葛野麻呂, 755~818)가 『금강반야경』187권의 필사 공양을 시행하였다. 카도노마로는 견당사의 대사가 되어 엔랴쿠 23년(804)에 쿠카이 일행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갔으나 그들이 탄 배는 폭풍우를 만나 1개월 정도 해상을 표류하였다. 겨우 귀국할 수 있었던 카도노마로는 약속대로 『금강반야경』187권을 필사하여 신께 바쳤다.
이때 쿠카이는 카도노마로를 대신하여 발원분을 집필하였다. 이 금강반야경 개제는 그때 집필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서 중에는 가필과 수정한 부분이 보여 초고임을 알 수 있다.
100244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