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노(狩野)파에서 벗어나 전원 풍속화라는 새로운 영역을 구축한 구스미 모리카게(久隅守景, 생몰연도 미상)의 대표작이다. 모리카게는 가노 단유(狩野探幽)의 수제자였으나 나중에 파문을 당하였고 그후 가가(加賀) 지방의 영주였던 마에다(前田) 집안의 비호를 받았다.
어스프레한 달빛이 비치는 밤나팔꽃 시렁 밑에서 저물어가는 풍경을 즐기며 농부의 가족이 서늘한 바람을 쐬고 있다. 튼실하지만 멋없게 생긴 남자의 팔은 굵은 먹선으로 윤곽을 잡았고 여인네의 부드럽고 매끄러운 몸매는 가늘고 유창한 선으로 묘사해 흰 피부를 선명하게 부각시켰다. 한창 개구장이일 듯한 어린아이는 반쯤 벗은 몸을 아버지쪽으로 다정하게 기울이고 있다. 세 사람의 얼굴은 정교한 필치로 그 표정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으며 밤나팔꽃의 잎과 초가 지붕은 거칠며 때로는 번지는 듯한 빠른 붓질로 단번에 묘사해 내고 있다. 땅거미를 의식해서인지 담묵을 사용하여 고즈넉하고 차분한 가족의 한 때를 그려냈다.
주제는 에도시대 전기의 시인인 기노시타 조쇼시(木下長囃子)가 지은‘밤나팔꽃 드리운 처마 끝에 이는 서늘한 바람, 주인은 잠방이에 아낙은 속고쟁이’라는 시구에서 착상을 얻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