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적은 호(戶)를 단위로 하여 인구 파악, 병사 징발, 농작물 수수 등을 위해 6년에 한번씩 작성되었다. 본 유물은 타이호 2년(702) 치쿠젠노쿠니 시마군 카와노베리(筑前國嶋郡川邊里)의 호적 일부로, 현존하는 호적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이다. 원래는 쇼소인(正倉院)에 있었다.
기재 방법은 1행 1명으로, 호구의 배열은 혈연 순으로 하였다. 호의 끝에는 정부로부터 지급받은 구분전(區分田)의 총 수를 기입하였고, 문자가 있는 부분과 종이의 이음매 뒤에는 「筑前國印」라는 날인을 찍었다. 문자는 중국 육조(六朝)풍으로 정연하게 쓰여있다.
치쿠젠노쿠니 시마군 카와노베리는 현해탄을 바라보는 이토시마(絲島) 반도로, 지금의 후쿠오카현 이토시마시(絲島市) 주변으로 보인다. 예전에는 시마군의 군아(郡衙)가 있었다.
종이 뒷면에는 텐표20년(748)에 쓰여진 「천부법화경교장(千部法華經校帳)」의 단편이 있는데, 이는 호적의 보존 기간이 지나 사경소에서 이면지로 이용되었을 때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