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의 극락 정토 세계를 그린 도상은 중국・당의 승려 선도(善導, 613~681)가 『관무량수불경소』(『관경소』)를 집필한 것을 계기로 활발하게 그려지게 되었다. 일본 나라 시대(710~794)에는 보다 초기적인 도안인 아미타 정토토와 함께 관경만다라(觀經曼茶羅, 타이마만다라)도 알려져 있다. 또한 나라 시대 후기에는 간고지(元興寺)의 승려 지코(智光, 709?~780?)가 감득하였다고 하는 간략한 정토도 가운데, 지코와 라이코우(생몰년미상) 두 승려가 그린 지코만다라(智光曼茶羅)가, 헤이안 시대(794~1185) 중기에는 세이카이만다라(淸海曼茶羅)도 성립하였다.
타이마만다라(當麻曼荼羅)에는 아사세왕(阿闍世王)의 설화와 구품내영(九品來迎)의 장면이 정토도 주변에 그려져 있고, 세이카이만다라에는 십육관의 송구(頌句)와 연대(蓮臺)가 동일한 방식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본 도상에는 그러한 도상은 없고 극락 정토의 세계만을 전체적으로 그려내었다. 이러한 점은 나라 시대 후기에 성립되었다고 하는 지코만다라에 가깝고, 보다 원초적인 당나라의 정토도 구상을 바탕으로 발전・성립한 것으로 보인다. 상부에는 허공(虛空) ・보루(寶樓) ・화좌(華座) ・보지(寶池) ・무악(舞樂)의 각 단을 표현하였고, 화좌단에 네 명의 비구(四比丘)를 더하였다. 또한 무악단에는 두 명의 동자(童子)를 표현하는 등, 보다 복잡한 구성으로 된 점으로 보아 나라・간고지의 판회 지코만다라(板繪智光曼茶羅)에 가까운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본 도상의 아미타여래가 전법륜인(轉法輪印)을 취하는 모습은 지코만다라가 미개부연화합장인(未開敷蓮華合掌印)을 취하는 모습과 다르며, 당나라의 정토 중존(中尊)에서 표현된 옛 방식의 인상(印相)과 일치한다.
따뜻한 채색 계열로 이루어져 있으며, 백록(白綠)과 대비되면서 독자적인 온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신체의 선은 진한 붉은 색으로 그렸고, 각 존상은 선명한 얼굴선을 자아낸다. 의복에도 뚜렷한 옷 주름을 드러내며, 금박을 가늘게 잘라 붙이는 기법인 키리카네 문양으로 아름답게 장신구를 표현하였다. 헤이안 시대 후기에 제작된 족자 장식의 정토도로서 고야산・사이젠인(高野山西禪院)의 소장본과 함께 매우 귀중한 작품이다. 나라・고쿠라쿠지(奈良極樂寺)에 세이카이만다다로서 전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