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호 가쿠묘(1271-1361)는 가마쿠라시대 후기부터 남북조시대에 걸쳐 활약한 임제종의 고승이다. 처음에는 천태종 승려로서 천태교학을 배우며 히에이산에서 수계하였으나, 이윽고 무혼 가쿠신(1207-1298)을 스승으로 삼고 선종으로 전향하였다. 인가를 받은 후, 고호 겐니치(1241-1316)와 난포 조민(1235-1308) 밑에게 참선하고, 선종의 깊은 의미를 찾기 위해 1311년 21살의 나이에 중국 원나라로 건너 갔다. 원나라에서는 중봉 명본, 고림 청무, 단애 요의, 운외 운수, 무견 선도 등의 가르침을 받았다. 귀국 후에는 시마네현 이즈모의 운주지 절을 세우고, 그 후 호키국(현재 돗코리현 중서부)의 센조산에 머물던 고다이고천황에게 선법의 중요한 뜻인 선요를 설법하여, ‘국제국사’라는 호를 하사 받았다. 또 고무라카미천황으로부터는 ‘삼광국사’라는 호를 하사 받았으며, 남북조 혼란기에 91세의 생을 마감하였다.
그리고 고호 가쿠묘의 스승 무혼 가쿠신은 진언종에서 선종으로 전향한 뒤 송나라로 건너가 무문혜개(1183-1260)의 법맥을 계승한 인물이다. 그리고 무문혜개가 편집한 공안집 《무문관》을 일본에 소개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한편, 고호 가쿠묘가 남긴 묵적은 그 수가 적으며, 그의 후계자 고켄 지토쓰에게 보낸 법어가 운주지 절에 전해지는 것을 제외하고는, 여기에서 소개하는 묵적이 유명하다. 수행을 격려하는 내용의 글로, 이 묵적을 받은 호주 다이시(保樹大姉)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이 작품의 낙관에는 ‘송나라로 건너간 비구 고호 가쿠묘의 서’라고 쓰여 있는데, 운주지 절이 소장하는 묵서에도 같은 내용의 낙관이 찍혀 있어, 젊은 나이에 중국에서 선종을 체득한 것을 일생에 걸친 격려로 삼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묵적의 제작 시기는 알 수 없으나, 24행에 달하는 큰 폭의 묵적으로, 서풍으로 보아 말년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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