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문화재상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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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지와라노테이카 필
  • 1폭
  • 지본묵서
  • 123.0×108.4
  • 가마쿠라시대·13세기
  • 도쿄국립박물관
  • B-2369

후지와라노 사다이에(1162-1241)는 가인으로서 명성이 높은 도시나리의 아들이다. 『신고금화가집』에 선별된 한 사람이기도 하며 고토바인을 둘러 싼 궁정가연의 동량으로 활약했다.
궁정 귀족으로서 그는 그다지 좋지 못한 시기가 있었다. 즉 1189년 사다이에가 28세로 좌근위권소장으로 임관한 후로 14년간 같은 지위에 방치되어 있었다. 이에 자신이 직접 중장으로 승진을 희망하여 신청한 것이 이 문서인 것이다. 먼저 서두「전임소망사」의 삼행 후에 「취중, 수영 2년 가을, 첨열선적이래, 봉공년 20년」이라 되어 있어 아직 사다이에의 일기 『명월기』(건인 2년 7월 22일조)에도 벼슬 임명식의 시기가 가까워졌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소식이 없는 것을 탄식한 기술이 발견된다. 그 결과 1202년 10월에 좌근위관중장으로 승진 숙원을 이룰 수가 있었다. 이 때 사다이에는 41세이다. 그 후 계속해서 중납언, 정2품에 이르렀으며 1241년 80세로 사망했다. 굵은체의 특이한 기벽이 강한 필선은 기백이 묻어나는 그의 심상과 성격을 알게 해 준다. 후세에 이 특이한 서풍은 가인, 차인의 사이에서 존중되어 이것을 모방한 서체를 쓰는 사람이 나타났다. 고보리 엔슈, 마츠다이라 후마이 등이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 이며 “사다이에 류”라는 이름으로 오래 동안 유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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