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카쥬지(勸修寺)에서 전래하였기 때문에 ‘카쥬지 수장(繡帳)’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자수 역작이다. 보수(寶樹)와 보개(寶蓋) 아래, 고대 인도의 굽타 왕조에서 탄생한 예술 양식을 도입한 보좌(寶座)에 붉은 옷을 걸친 석가여래가 앉아있다. 그를 중심으로 보살, 비구, 일반 공양자들이 모여 있다. 구름 위에는 음악을 연주하는 천인(天人)과 새를 타고 있는 신선들의 모습이 보인다. 오랫동안 인도 마가다국의 기사굴산(耆闍崛山, 영취산)에서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였으나, 최근 미륵불 혹은 우전왕상(優塡王像, 고대 인도 우전왕이 제작케 한 석가상) 공양도(供養圖)로 보는 설, 석가가 생모 마야부인(摩耶夫人)의 사후 전생한 도리천(忉利天)에 올라 어머니를 위해 설법하는 모습을 표현한 석가도리천설법도(釋迦忉利天說法圖)라고 보는 설이 등장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동경하던 정토 세계를 장엄한 모습을 여기에서 엿볼 수 있다.
큰 화면의 직물은 흰색 평견(平絹)이다. 그 위로 펼쳐진 수법(繡法)은 실로 알갱이 모양의 구슬을 만들어 수놓는 자수 기법(相良繍)과 'Z' 모양으로 꼰 실로 사슬 모양으로 문양을 수를 놓는 자수 기법(鎖繡) 등이 구사되었다. 전자의 경우 석가의 나발과 대좌, 각 보살들의 장식, 옷 주름, 비구들이 들고 있는 물건 등 일부 구간에서 보이며, 후자의 경우 그 외 각 본존과 인물 등의 사이에서 보인다. 이 때문에 바탕이 되는 직물은 자수가 없어진 부분을 제외하고 온전한 상태를 자랑한다. 자수로 놓은 크고 작은 구슬, 두꺼운 실을 사용한 사슬 모양의 자수, 자수를 놓는 방향도 필요에 따라 달라지는 등 회화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입체감이 표현되었다. 이는 당시의 제작자가 자수 기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숙련도 또한 깊었음을 알 수 있다.
제작 시기는 중국 돈황(敦煌) 지역의 벽화와 용문(龍門) 석굴의 불상, 일본의 호류지(法隆寺) 금당 벽화 등의 비교를 통해 8세기 초기를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이나, 제작 지역에 대해서는 중국설과 일본설이 공존한다. 그러나 전체를 자수로 채우는 것과 구슬 모양의 자수는 그 당시 일본에서 만들어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것으로 보아 중국 당나라(618~907)에서 제작된 설이 조금 더 유력하다.
지금은 액자 형태로 되어 있으나 이는 본 작품을 수리할 때 도입한 것으로, 원래는 벽면에 걸어 당내를 장엄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최근 이루어진 수리에서도 과거의 수리를 답습하였다. 당시 기록으로 보아 이와 같은 수장이 다수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대부분 남아있지 않아 그런 의미에서도 매우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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