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응미천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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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타나베칸잔 필
  • 1폭
  • 견본착색
  • 1151.0×57.2
  • 에도시대・덴포8년(1837)
  • 도쿄국립박물관
  • A-9972

와타나베 가잔(1793-1841)의 초상화 중 최고의 걸작이다. 가잔은 미카와 다하라(三河 田原)*지방 영주의 에도 저택을 관리하던 중신으로 번정(藩政) 개혁에도 참여하였으나 반샤노고쿠(蛮社之獄)* 사건에 관련되어 다하라에 칩거하던 중 스스로 49세의 나이에 자결하였다. 그림은 가네코 긴료(金子金陵)와 그의 스승인 다니 분초(谷文晁)에게 배웠고 서양화의 원근법과 음영법도 받아들여 독자적인 화풍을 확립하였다.
다카미 센세키(1785-1858)는 고가(古河)*번의 가신이며 난학자(蘭学者)*이다. 오시오 헤이하치로(大塩平八郎)의 난(1837년) 때 진압에 공을 세운 영주를 대신하여 센세키가 아사쿠사(浅草)의 세이간지(誓願寺) 절에 참배하러 왔을 때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옷에 무사의 건(巾)을 쓴 정장 차림의 그를 난학 제자였던 가잔이 그린 것이라고 전한다. 가잔 45세 때의 작품이다. 정교한 붓 사용과 미묘한 음영을 넣은 얼굴 묘사는 매우 사실적이지만 의복의 표현은 대범하게 처리하였다.

*미카와 다하라:지금의 아이치(愛知)현 동부
*반샤노고쿠:1839년 에도 막부가 와타나베 가잔 등에게 가한 언론탄압 사건
*고가:지금의 아바라기(茨城)현의 서부
*난학자:에도시대 중기이후 화란(네덜란드)어를 배워 화란 서적을 통해 서양의 학문을 연구했던 학자를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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