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섬서성 서안시 보경사(寶慶寺)의 불전 및 불탑에 감입되어 있었던 석조 불상군 중 하나이다. 이 석조 불상군은 7세기 후반 경에 국호를 주(周)로 고친 측천무후(則天武后, 624~705, 재위 690~704)가 측근인 승려 덕감(德感, 생몰년미상)을 총감독으로 명하여 장안 3년(703)부터 이듬해에 걸쳐 축조시킨 광택사(光宅寺) 칠보대를 장엄한 것이다. 청나라(1616~1912) 초기에 중수된 육각 칠층탑에 현존하는 6점을 포함하면 현재 32점(중국 7점, 일본 21전, 미국 4점)이 알려져 있으며 그중 십일면관음상은 7점이 있다. 모두 고대 인도 양식을 소화한 전형적인 당나라(618~907) 초기 양식이다. 당시 장안 내 관영 공방의 기준작으로서 매우 가치가 높다. 본 작품은 가늘고 긴 석회암을 조각하여 불감(佛龕)을 만들었고 보주(寶珠) 형태의 두광(頭光)을 배경으로 연화좌 위에 서 있는 십일면관음의 모습을 표현하였다. 둥근 얼굴에 윤택함이 넘치는 눈동자를 가진 표정에서 기품이 느껴진다. 하반신에 얇은 의복이 밀착되어 가느다란 모습을 보인다. 머리 위에는 1, 4, 5면의 관음으로 구성되었다. 오른손을 구부려 ‘멸죄(滅罪)’를 뜻하는 인장을 취하고 왼손을 내려 손바닥을 보이게 하였다. 보경사의 십일면관음은 다양한 소지품을 지니고 있는데 본 불상의 인장의 경우 ‘천수천안 관세음보살 흥대 원만 무애 대비심 다라심경(千手千眼觀世音菩薩廣大圓滿無礙大悲心陀羅尼經, 천수천안다라니경)에서 보이는 천수관음의 사십대수(四十大手)에 포함되는 ‘보인수(寶印手)’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멸죄’라는 두 글자가 쓰인 것으로 보아 나라 토다이지 슈니에(東大寺修二會)를 대표하는 십일면회과(十一面悔過) 의례를 연상시킨다. 측천무후 재위기에 발전한 변화관음(變化觀音) 신앙의 실태를 알 수 있어 주목된다. 그리고 광택사는 기봉 2년(677)에 내려진 칙령에서 불사리 만여 입을 발굴하였다는 전승이 있는 곳으로 그 사리출토 설화는 측천무후가 제위에 오르기 위한 명분을 만들기 위하여 편찬된 『대운경소(大雲經疏)』에도 보인다. 칠보대 및 석제 불상군의 제작 배경에는 측천무후가 불교를 이용하여 정권을 찬탈하고자 한 명백한 의도가 있음이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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