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인도에서 귀인에게 바쳐진 꽃에서 유래한 화만(華鬘)은 불교에서 법당 내부를 장엄하게 장식하는 도구로도 사용되었다. 일본에서는 생화 대신에 쇠가죽, 금속, 나무, 옥, 비단 등이 화만의 재료로 사용되었으며 옆으로 긴 타원형의 부채 모양이 많이 제작되었다.
이 작품은 부채 모양의 쇠가죽 화만으로 교토 도지(東寺) 절에 전래되어온 것이다. 현재 원형을 갖추고 있는 13개 외에 약간의 잔편이 남아 있다. 제작 기법을 보면 쇠가죽을 투각하여 옻칠을 해 바탕을 만든 뒤 그 위에 채색으로 문양을 그려넣은 것이다.
13개의 화만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꽃에 비유한 보상화문(宝相華文) 바탕에 두 마리의 가릉빈가(迦陵頻伽)*를 마주보게 그린 것이 있다. 이러한 형식의 화만에는 중앙에 매듭 모양처럼 된 곳에 꽃을 꽂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가릉빈가는 불, 보살을 찬양하기 위한 산화(散華)용 꽃이 담긴 쟁반을 받들고 있다. 또 다른 형식은 중앙의 매듭 모양을 중심으로 보상당초문(宝相唐草文)만 그린 것이다.
이러한 구분에도 불구하고 13개의 화만은 각각 제작기법상의 차이가 엿보인다. 가릉빈가문이나 보상당초문만 해도 서너 종류의 작풍이 뒤섞여 있어 처음부터 한 세트로 제작된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 이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솜씨를 보이고 있는 ‘등호(登号)’‘지호(知号)’는 가릉빈가의 윤곽선에 붉은 먹이 사용되었으며 옷 부분에는 섬세한 재금(截金) 기법*이 구사되는 등 헤이안 시대에 불화의 제작기법들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보상당초문 화만에서는 운간채색(繧繝彩色)* 기법 위에 다시 재금 기법이 사용되기도 했다.
보상화문 바탕 위에 가릉빈가를 마주보게 배치한 도안은 12세기 전반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와테(岩手)현 쥬손지(中尊寺) 절의 금동투조화만(金銅透彫華鬘)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넉넉한 품격이 담긴 이 작품이 시대적으로 앞선 것으로 여겨진다. 이 화만들이 도지 절의 어느 전각(殿閣)을 장식했던 것인가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제작 시기는 11세기경으로 추정된다.
*가릉빈가:사람의 머리를 하고 있는 극락 세계의 새
*재금 기법:기리가네, 금박을 가늘게 잘라 문양의 장식에 사용한 기법
*운간채색:운겐사이시키, 하나의 색을 점차 엷게 하거나 또는 짙게 하여 농담의 차를 나타내는 기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