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본은 헤이안 시대의《만엽집》사본 가운데'계궁본(桂宮本)''남지본(藍紙本)''금택본(金澤本)''천치본(天治本)'과 나란히 5대 만엽집으로 불리우는 것이다.'원력교본'이란 명칭은 권 제 20의 권말에 원력 원년(1184)에 원문과 비교 대조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데에서 비롯한다. 5대 만엽집 중에서도 이 사본은 사서된 시가의 수가 가장 많고 또한 뛰어난 필체의 소유자 몇 사람이 분담하여 사서한 점에서 특히 중요시되는 사본이다.
자색과 남색으로 흐르는 구름 문양을 나타낸 안피지에 엷은 먹으로 괘선을 긋고 만요 가나(万葉仮名)*와 가나로 시가를 적었다. 권 제1은 삼적(三跡) 중 한 사람인 후지와라 유키나리(藤原行成)*의 필체라고 전하지만 서풍상 그보다 늦은 헤이안시대 후기의 필적으로 추측된다.
원래는 이세 마쓰자카(伊勢松阪) 지방의 나카가와 조우(中川浄宇)의 소장이었지만 아리스가와노미야(有栖川宮) 집안을 거쳐 다카마츠노미야(高松宮) 집안에 6책, 그리고 구와나(桑名) 지방의 영주를 지낸 마쓰다이라(松平) 집안과 막부의 정무 책임자였던 미즈노 다타히코(1794-1851)*의 손을 거쳐 고가(古河) 집안에 14책으로 각각 나뉘어 전해지게 되었다.
*만요 가나:한자의 음과 훈을 가차하여 일본어의 음운표기에 이용한 표음문자. 특히《만엽집(万葉集)》에 많은 예가 나타나는 것에서 유래하여 만요 가나라고 불리워진다
*후지와라 유키나리(972-1027):헤이안 시대의 귀족 서예가로 유명한 인물. 일본 서예사에서 유키나리는 오노 미치카제(小野道風), 후지와라 스케마사(藤原佐理)와 함께 삼적(三跡)이라고 불리운다
*미즈노 다타히코(1794-1851):에도 막부에서 장군 직속의 정무 최고책임자(老中)였던 인물로 막부 정치개혁을 지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