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중국에서는 동쪽 바다 위에 신선이 사는 불로불사의 땅인 봉래산(蓬萊山)이 있다고 믿어왔다. 구름 같기도 하고 바다에 떠 있는 섬처럼도 보여 속인이 가까이 가려고 하면 바람에 날려 멀리 가버린다고 한다. 육조시대에 성립한 신선의 전기집인 《열선전(列仙傳)》에서는 큰 거북이가 봉래산을 등에 업어 떠받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벼루 상자는 그 내용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뚜껑, 몸체, 벼루 안에 들어가는 작은 상자 모두 주석으로 테두리를 둘렀고 마키에의 한 종류인 바탕에 옻칠한 후 금은 가루를 뿌리는 나시지(梨地) 기법, 문양을 두껍게 옻칠한 후 금박을 뿌려 연마하는 금 다카마키에(金高蒔繪) 기법, 미세한 선을 그려 넣는 금 쓰케가키(金付描) 기법, 그리고 은박을 붙여 장식하는 은 기리카네(銀切金) 기법 등 전통적인 기법으로 봉래산을 표현했다. 예스럽고 단아함을 나타내는 봉래산과는 달리 거북이의 표정 등은 어딘지 모르게 해학적이다.
마쓰에번(松江藩)의 번주 마쓰다이라 후마이(松平不昧, 1751~1818)가 수집한 도구 목록인 《운슈장장(雲州藏帳)》에 수록된 ‘시대봉래마키에(時代蓬萊蒔へ)’에 해당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데서 후마이가 소장했던 명품 도구로 알려지는 벼루 상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