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천수천안다라니경(千手千眼陀羅尼経, 玄昉願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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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권
  • 세로25.5cm 가로246cm
  • 교토국립박물관
  • B甲62

  741년의 우란분재(盂蘭盆斎)* 때 당시 최고위 승려였던 겐보(玄昉 ?-746) 승정이 쇼무(聖武) 천왕, 겐쇼다이조(元正太上) 천왕, 고묘(光明) 황후 등의 장수와 황태자, 황족들, 문무백관, 만백성의 충효 그리고 삼악도에 떨어진 중생의 구제를 서원하면서《천수천안다라니경》1천권을 사서하였는데 현재 남아있는 것은 이 한 권뿐이다.
《동대사요록(東大寺要録)》권 제1의 741년 항목을 보면‘7월15일, 겐보 승정이 사경을 발원하여 천수경 1천권을 공양하다(七月十五日玄昉僧正発願書写 供養千手経一千巻)’라는 기록이 있어 예전부터 이 경의 존재가 알려져왔다. 그후 이 사경이 발견됨으로서 그 실체가 입증되어 역사학 측면에서 보아도 대단히 귀중한 유품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책 앞부분이 떨어져나가 경문은 109행만 남아 있다.
서풍은 힘차고 약동적이며 또한 온화하고 품위가 있어 덴표(天平) 시대의 유능한 사경생(写経生)들이 서사한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필체 또한 우수하여 나라 시대의 뛰어난 사경 중 하나로 손꼽힌다.
옛부터 일본에서는 한문을 훈독하기 위한 훈점(訓点)이 사용되었다. 한자음을 상징하는 점이나 선 등의 부호와 가나(仮名)를 한자의 네 귀퉁이에 표시했는데 그 중에서 조사(助詞)를 표시한 것을‘호고지점(乎古止点)’, 액센트와 음의 청탁을 표시한 것을‘성점(声点)’ 그리고 한자의 음만 가나로 표시한 것을‘만엽가나(万葉仮名)’라고 한다. 또한 훈점은 먹의 색깔에 따라‘백서(白点)’‘주서(朱点)’‘흑서(黒点)’로 나뉘는데 10세기 이후에는 주로 주서와 흑서가 많이 사용되었다. 이 사경에도 헤이안시대 후기에 사용되었던 붉은 호고지점, 성점, 주서나 흑서의 가나 등이 표시되어 있어 훈점 자료로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사경의 발원자 겐보는 속성이 아도(阿刀)로서 716년 다치바나 모로에(橘諸兄), 기비 마키비(吉備真備), 아베 나카마로(阿倍仲麻呂) 등과 함께 당나라에 건너가 법상종을 배운 뒤 735년 5천여 권의 경전과 논서를 가지고 돌아와 당시 승려로서는 최위직인 승정이 되었다. 더욱이 쇼무 천왕의 어머니인 후지와라 미야코(藤原宮子)의 병을 치유한 공로로 조정의 존경과 신임을 얻어 기비 마키비와 함께 다치바나 모로에 정권의 중심 인물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740년 다자이후(太宰府)*에서 후지와라 히로쓰구(藤原広嗣)에 의한 반란이 일어나 배척당한 후 745년 다이자후 관세음사로 좌천되어 이듬해 그곳에서 죽었다.

*우란분재:우란분경(盂蘭盆経) 속의 목건련의 설화를 근거로 하안거(夏安居)의 끝날인 음력 칠월 보름날 조상의 명복을 빌며 부처님, 출가자, 중생에게 공양하는 불사(仏事)
*다자이후:지금의 후쿠오카(福岡)현의 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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