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기독교 관계 자료는 회화, 조각상, 메달, 십자가, 묵주, 후미에(踏絵)* 등인데,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나가사키 부교쇼(奉行所)*가 신도에게서 몰수한 물품으로, 그 유서를 명확히 알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들 자료는 1874년 유신 후에 자료를 물려받은 나가사키 현이 후미에를 구입하기 원하는 외국인의 요망을 들어주기 어렵다 하여 자료 전체를 당시의 교부성에 인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내무성 사사국(社寺局)에서 관할하게 되면서 내무성 박물국 소속 박물관(도쿄국립박물관의 전신)이 이어받게 된 것이다.
회화 가운데 ≪3성인상(三聖人像)≫은 대형 포제(布製) 유화이다. 기독교 선교사들은 이러한 그림을 가지고 일본에 들어왔지만, 긴 여행과 보존상의 이유에서 대형 그림은 그 수가 적었고 대부분이 소형 동판에 그려진 유채화였을 것이다. 그 중에서 ≪엄지손가락의 마리아(親指のマリア)≫는 1708년 야쿠시마(屋久島) 섬에 잠입하여 체포된 이탈리아인 선교사 조완니 시드치(1667~1714)가 소지하고 있던 성모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옷에서 살짝 보이는 엄지손가락 때문에 이처럼 명명되었다.
조각상으로는 납으로 제작된 예수상이나 조개 껍데기 등으로 제작된 부조 예수상 등이 있다. ≪백자관음보살상≫(마리아 관음)은 중국 복건성의 덕화요(徳化窯)에서 만들어진 백자 관음상으로, 기독교 탄압 속에서 신도들은 관음상을 성모 마리아 대신으로 생각하며 비밀리에 숭배하였다. 대부분 1855년 우라카미(浦上) 3차 탄압사건에서 나가사키 부교쇼가 몰수한 것으로, 본래의 소유자가 적잖이 판명되었다.
1865년 개국 후의 나가사키에 들어온 파리 외국선교회의 프티장 신부는 포교를 위해 가지고 온 십자가와 메달, 묵주를 우라카미의 신도들에게 주었지만, 1867년 우라카미 4차 탄압사건에서 그 대부분이 몰수되었다. 또한 교토 부의 후쿠치야마(福知山) 산에서 발견된 온전치 못한 메달이나 묵주 등도 유물에 포함되어 있다.
후미에는 신도를 판명하기 위해 1629년경부터 실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성화를 사용하였지만 쉽게 소모되고 수도 적었기 때문에, 신도에게서 몰수한 ‘동메달’을 두꺼운 판에 끼워 넣은 ‘판 후미에’를 후미에로 사용하였다. 나가사키 부교쇼가 1669년 주물공인 오기와라 유사(荻原祐佐) 등에게 명하여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놋쇠 후미에 19장이 현존하고 있다.
* 후미에: 에도 시대에 막부가 금지령 하에 있던 기독교 신도를 색출할 때 사용했던 목제나 금속제 판
* 부교쇼: 행정 사무를 담당하던 관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