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약사여래상은 일찍이 교토 냐쿠오지샤(若王子社) 신사에 신상(神像)으로 봉안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메이지(明治)시대 초기 신도와 불교가 분리될 때 신사의 신관(神官) 소유가 된 뒤 그후 세 사람의 수장가를 거쳐 국가에 귀속되었다.
냐쿠오지샤 신사는 고시라카와(後白河) 법황(1127-92)에 의해 권청(勧請)*되었다는 설이 있어 12세기경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작품상의 특징으로 보아 이 상은 9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신사 창건때부터 그곳에 안치된 것으로는 단정할 수 없다.
소재는 양 손목과 나발(螺髪)을 제외한 상 전체와 대좌의 연육부(蓮肉部)까지 비자 나무로 되어 있다. 구조는 각 부분을 조립한 것이 아니라 불상 전체가 하나의 목재로 조각된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나라시대 후기부터 헤이안시대 초기에 걸쳐 제작된 불상들에 나타나는 특색이다.
두껍게 흘러내린 옷주름 사이사이에 날카롭고 가느다란 작은 옷주름을 배치한 번파식(翻波式) 옷문양을 능숙하게 조각한 수법과, 교토 도지(東寺) 절의 성승문수상(聖僧文殊像), 오사카 시텐노지(四天王寺) 절의 아미타삼존 중 본존상 등과 유사한 작풍으로 보여 이 불상 역시 9세기 중반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에도 특이한 이국적인 용모가 표현상 주목할 만한 점으로 손꼽힌다. 두터운 눈꺼풀, 긴 눈꼬리, 콧날이 선 코 등에서 어딘가 인도 불상의 표정이 연상된다. 인도풍의 불상으로 오사카 간신지(観心寺) 절의 여의륜관음상(如意輪観音像), 나라 호케지(法華寺) 절의 십일면관음상(十一面観音像), 고세쓰(香雪) 미술관의 약사여래좌상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이국풍의 불상은 헤이안시대 초기의 불상 제작에 있어 하나의 흐름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권청:부처나 신의 성스러운 영을 청하여 불러오는 일로서 이러한 권청에 의해 비로소 절이나 신사가 창건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