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幡)은 사원의 당우 안팎을 장식하는 장엄 도구의 하나로서 고대에는 염직품이 많았다. 이 관정번은‘호류지절 헌납보물(法隆寺献納宝物)’*을 대표하는 명품이다. 뛰어난 투조 기법을 구사해 여래, 천인, 구름, 당초문 등을 투각한 여러 장의 금동판을 이어 만들었다. 맨 위를 덮는 천개(天蓋)와 중앙에 늘어 뜨려진 대번(大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천개는 4매의 금동판을 이어 우산 형태로 만들고 둘레에 사설(蛇舌)이라고 하는 금장식을 둘렀으며 그 밑으로 많은 술이 달려 있다. 대번은 천개 중앙에서 내려 뜨리는 것으로 6매를 각각 나비모양의 경첩으로 이었다. 제작 당초에는 염직번과 같이 끝단에 헝겊으로 된 번 발이 달려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길이는 10미터 정도였을 것으로 보인다.
천개와 대번에는 구름 속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천인, 꽃과 향을 받치고 있는 천인 등이 배치되어 있으며 대번의 가장자리에는 투조된 인동당초문(忍冬唐草文)의 띠가 둘러져 있다. 또한 맨 윗쪽의 대번 1매에는 여래삼존상(如来三尊像)이 투조되어 있다.
관정(灌頂)은 머리에 물을 부어 부처님의 제자로서 상당한 지위에 올랐다는 것을 증명하는 의식이다. 관정번에도 관정을 받는 것과 같은 공덕이 깃들어 있다고 여겨진 듯하다.
*호류지절 헌납보물:1878년 호류지 절에서 황실에 헌납한 330여개의 보물로 1949년 국가에 귀속되어 현재 도쿄 국립박물관 내 호류지 보물관에 보관 전시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