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혼아미 고에쓰(本阿弥光悦 1558-1637) 양식을 계승하면서 자신의 독자적인 작풍을 확립한 린파(琳派)*의 중심적 예술가 오가타 고린(1658-1716)의 벼루 상자이다. 모서리를 둥글게 한 직사각형으로 본체보다 크게 만들어진 뚜껑이 본체를 덮어 씌우는 형태로 되어 있다. 상하 2단 중 윗단은 벼루 상자로서 가운데 금으로 테두리를 한 벼루와 동제 직사각형의 연적을, 그리고 아랫단에는 종이를 넣게 되어 있다.
디자인은 고린이 즐겨 다룬 이세모노가타리(伊勢物語) 제9단의 야쓰바시(八橋)* 장면을 따랐다. 표면에 검은 옻칠을 바르고 뚜껑 표면과 본체 측면에는 제비붓꽃과 널다리를 묘사했다. 제비붓꽃은 두꺼운 전복껍질 조각으로, 잎과 줄기는 금 마키에로 표현하였다. 다리는 부식시킨 납판(鉛板)을 사용해 질감을 나타냈으며 다리 기둥은 은판을 사용하였다. 내부의 상하 각단의 바닥에는 금 마키에기법으로 파도 문양을 그렸다.
뚜껑 표면은 위에서 비스듬히 내려다 본 구도이며 본체에 그려진 다리는 수직으로 내려다 본 구도를 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검은 색과 금・은색의 대비, 주제의 본질을 잘 드러내 주는 구도 등에서 작자 고린의 섬세한 감성과 치밀한 계산 아래 표현된 대담한 조형성을 느낄 수 있다.
*린파:소타츠 고린(宗達光琳)파의 약칭으로 일본 에도시대 회화의 한 유파
*야쓰바시:아이치현 지류시(愛知県知立市)의 동부, 이세모노가타리 제9단에 제비붓꽃의 명소로 노래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