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경사 절 석불군으로 불리는 30여 점의 부조 불감 중 하나로, 중국 당대 조각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다. 보경사 절은 중국 명나라 장안성의 남문에 해당하는 영녕문 근처에 있던 사찰로, 현재는 이 불감과 함께 하나의 작품군을 형성하는 여러 점의 감상(석벽 등을 파낸 벽감에 새긴 불상)이 모셔진 벽돌탑이 남아 있을 뿐이다.
보경사 절 불당 내에 안치되어 있던 이 작품군은, 원래는 당나라 장안성 대명궁의 바로 남쪽에 위치한 광택방에 조영된 사찰 광택사의 칠보대에 안치되어 있었던 사실을, 이 불감을 포함한 여러 점의 작품에 남겨진 명문을 통해 알 수 있다. 또 장안3년-4년(703-704), 개원 12년(724)이라는 연대 기록이 있어, 8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광택사 절은 677년에 이 지역에서 불사리가 발견된 기적을 기념하여 세워진 사찰로,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제 무측전(재위 690년-705년)이 이곳에 칠보대를 건립하고, 석불군을 장엄구로 사용했다.
보경사 절 석불군은 삼존 형식과 독존 형식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삼존 형식의 작례는 중존이 항마인을 결한 여래 좌상, 시무외인을 결한 여래 좌상, 시무외인을 결하고 의좌(의자에 앉아 양 다리를 내린 상태) 형태의 여래상으로 나눌 수 있다. 독존상으로는 십일면관음보살 입상이 있다. 명문 기록을 통해, 삼존상 중 시무외인을 결한 여래 좌상은 아미타여래, 시무외인 수인을 한 의좌상은 미륵여래를 의도하여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항마인을 결한 좌상은, 보관을 쓴 작례와 대좌의 형식이 수미좌, 연화좌의 2종류가 있는 등 다양성을 지니는데, 이는 당시 인도에서 유행한 석가여래상의 모습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불감은 여래 의상(倚像)과 양 협시로 구성된 삼존상이다. 상단 구획에는 천개가 보이며, 그 좌우에 비상하는 한 쌍의 천인이 얕게 부조되었다. 하단의 사각형 구획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괵국의 공 양사욱이라는 인물이 기진한 것을 알 수 있다. 의상을 중존으로 삼은 동일한 형식의 다른 작례의 명문에 '미륵상'을 조성한다는 기록이 있어, 이 중존 또한 미륵여래로서 제작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