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삼채를 모델로 하여 일본에서 처음 만들어진 삼채가 나라삼채이다. 바탕흙은 약간 황색을 띤 회백색의 도기질로, 비교적 단단하게 소성되었다. 성형 방법은 점토띠를 쌓아 올린 뒤, 물레를 이용하여 주걱 모양의 도구로 그릇의 표면을 다듬었다. 기형은 어깨 부분이 크게 부풀어 올랐고 아래로 향하며 오므라진 편평한 구형이지만, 전체적으로 두리뭉실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구연부는 조금 긴 편으로 내부를 향해 오므라지면서 섰고, 가장자리는 편평하게 마무리되었다. 바닥에는 밖으로 크게 벌어지며 폭이 좁은 굽을 갖고 있는데, 굽 가장자리에는 소성할 때 지면에 붙지 않도록 비짐눈을 받쳤던 흔적이 3군데 미미하게 확인된다. 그릇 표면 전체에 백니를 솔로 발라 화장토로 삼고, 표면에는 삼채유를 발랐으며, 바닥과 내부에는 녹색을 띠는 투명유를 시유했다. 광택을 지닌 삼채유는, 먼저 투명유를 입히고 그 위에 녹유를 중심적으로 배치한 뒤, 그 사이사이에 갈유를 점으로 시유했다.
당삼채는 일본에는 아스카시대를 중심으로 들어왔고, 나라시대에 들어서자 그 영향을 받은 나라삼채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당시 수도가 있던 곳 주변인 기나이 지역을 중심으로 일본 전국에서 출토되며, 나라현 도다이지 절 보물창고 쇼소인에는 57점이 전해진다. 또 당삼채가 무덤에 묻는 명기였던 것에 반해, 나라삼채는 일본에 존재하던 하지키와 스에키, 금속기 등의 기형에 삼채유를 발라 만들어진 실용품이었다. 이 작품은 남겨진 예가 적은 완형의 나라삼채 항아리로서 귀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