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보대사 구카이(弘法大師 空海 774-835)가 지은《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能断金剛般若波羅 蜜経)》의 개제(開題)로 구카이 친필이다. 개제란 불교 경전의 제목에 대한 해석을 통해 그 대강의 요점을 서술하는 것을 말한다. 구카이는 경전 제목이 뜻하는 바를 밀교적 입장에서 어원 분석을 통한 해석과 의미를 풀이하는 해석으로 나누어 정리했다. 교토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내용은 그 가운데 63행만 남은 것이다.
이 사본은 초서와 행서가 섞여 있고 곳곳에 삭제 및 수정한 흔적 등이 있어 초고본으로 추정되며 구카이의 필적이 생생하게 남아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이 사본의 다른 38행은 나라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헤이안시대 초기의 승려인 구카이는 사누키(讃岐)* 지방의 출신으로 15살에 상경하여 18살에 대학에 입학한 뒤 출가하여 시코쿠(四国) 지방에서 수행하였다. 804년 유학승으로 당나라에 건너가 다음해 장안 청룡사(青竜寺)의 혜과(恵果)에게 전법관정(伝法灌頂)*을 받고 806년 수많은 경전과 법구를 가지고 귀국하였다. 귀국 후에는 고야잔(高野山) 산의 공고부지(金剛峰寺) 절을 개창하고 교토 도지(東寺) 절을 경영하는 등 진언(真言) 밀교의 가르침을 펴는데 힘을 기울였다. 그에 힘입어834년에는 후칠일어수법(後七日御修法)*이 칙령으로 정해지면서 진언 밀교가 국가 불교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사후인 921년 다이고(醍醐) 천황으로부터 고보 대사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고보 대사에 대한 신앙은 아주 깊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한 그는 한시, 한문, 서예에도 조예가 깊어 특히 서예에서는 일본 3대 명필*의 한 사람으로 알려질 정도로 일본의 문화사에 큰 업적을 남긴 고승이다.
*사누키:지금의 가가와(香川)현
*전법 관정:밀교에서 궁극의 법을 전수받는 의식
*후칠일어수법:매년 정월 초여드레부터 열사흘까지 궁중의 신곤인(真言院)에서 행하던 밀교 법회
*3대 명필:헤이안 초기의 사가(嵯峨) 천황, 구카이(空海), 다치바나 하야나리(橘逸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