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로마치시대 초기 선승들 사이에서‘서재도(書斎図)'라고 불리며 유행하였던 수묵 산수화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림 위쪽에 씌여진 3편의 찬시(賛詩) 가운데 첫번째 시의 첫 귀절을 따서 보통《수색만광도(水色巒光図)》라고도 한다.
서재도는 자연 속에 작은 암자를 짓고 그 속에서 독서 삼매를 즐기고자 한 문인(文人)적 이상을 수묵산수화 형식으로 표현한 그림이다. 그러나 실제의 서재도는 은거하려는 승려가 도회지에 있는 사찰 경내에 새로운 암자를 지었을 때 그것을 축하하기 위해 그려지는 것이 보통이다. 즉 문인적 풍취를 띤 서재 이름이 지어지고 그 이름에 어울리는 그림이 그려진 뒤 동료 승려들이 그 이름에 어울리는 시를 지어 축하한 것이 서재도이다. 일반적으로 서재도는 그림과 시가 합쳐져 하나의 작품이 된다. 시와 그림이 짝이 되는 그림 형식을 일반적으로‘시화축(詩画軸)'이라고 하며 서재도는 그 가운데 특히 서재를 주제로 한 그림이다. 시화축은 1394년부터 1441년 사이에 매우 유행하였다.
이 그림은 맨 마지막 시에 나타난 연기(年紀)로 보아 1445년 혹은 그 직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서재도 양식의 그림으로서는 가장 완성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이 그림은 산수화로서도 매우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오에이(応永 1394-1428) 시대에 그려진 서재도를 대표하는 작품으로는 1413년작으로 추정되는 난젠지(南禅寺) 절 곤치인(金地院) 소장의《계음소축도(渓陰小築図)》가 손꼽힌다. 그러나 이 그림은 지나치게 서재 중심의 묘사로서 주변 산수는 원근 관계가 애매한 채 기호처럼 덧붙여져 있어 산수 공간이 확산되는 느낌을 그다지 느낄 수 없는 소박한 구도를 띠고 있다.
이에 비하면《수색만광도》는 서재가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을 피하고 3그루의 소나무를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다. 그리고 바위 그늘에 점경처럼 서재를 배치한 근경(近景)과 물가 풍경을 그린 중경(中景) 그리고 높은 봉우리를 그린 원경(遠景)을 차례로 배치하여 웅대한 산수 경관을 적극적으로 묘사했다.
물론 이 그림도 화면 속의 각 요소들이 어딘지 모르게 막연한 관계 속에 놓여 있고 삼차원적 공간 감각 역시 그다지 합리적으로 표현되어 있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산수화에 있어 합리적인 세계가 구축되는 것은 다음 세대에 셋슈(雪舟)가 등장함으로서 비로서 달성된다.
이 그림에 보이는 불완전함은 어느 면에서 서재도 자체에 내포된 비현실적 성격에서 유래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오히려 그 점이《수색만광도》를 긍정적으로 받아들 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을 고려하면 이 그림은 선종 세계가 낳은 탈속적(脱俗的) 예술의 대표작으로 손꼽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