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구리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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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라시대・게이운4년(707)
  • 도쿄국립박물관
  • J-39201

에도시대 후기인 1831년, 야마토(大和) 지방의 우다군 야타키촌(宇陀郡八滝村)에서 밭을 갈던 농민이 발견한 화장 무덤의 일괄 출토품이다. 흙 속에서 나온 청동 상자에는 묘지를 새긴 동판이 들어 있었으며 그 옆에서 출토된 금동제 항아리 속에는 화장한 유골과 재를 담은 유리 항아리가 들어 있었다. 또한 청동 상자와 금동 항아리 주변에는 많은 목탄이 흩어져 있었다고 전한다. 이러한 발견 경위는 당시의 모습을 자세히 기록한 대관소(代官所)의 조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출토된 묘지에 의해 이 무덤이 707년 9월에 죽은 후미노 네마로의 무덤임이 판명되었다. 후미노 네마로는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래계였던 가와치노아야(西文) 씨족 출신의 무인으로서《일본서기(日本書紀)》《속일본기(続日本紀)》에도 그 이름이 등장하며 죽은 뒤에는 정4위상(正四位上)의 관직이 수여되었다.
화장의 습관은 불교의 전래와 함께 전해졌으며 이어 무덤에 묘지(墓誌)를 봉납하는 대륙의 풍습도 수용된 것으로 보인다. 후미노 네마로의 묘지는 화장 무덤에 부장된 묘지로서는 연대가 분명한 가장 오래된 사례이다. 또한 화장한 유골을 봉안하는 골장기로 녹유리 항아리가 사용된 예는 매우 희귀하고 외용기로 쓰인 금동 항아리 역시 뛰어난 물건이어서 임신(壬申)의 난의 공로자에 어울리는 매장 법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묘지는 주조한 동판의 표면에'임신년장군우위사부독정사위상문칭마 여기촌경운사년세차정미구월이십일졸(壬申年将軍左衛士府督正四位上文袮麻呂忌寸慶雲四年歳次丁未九月廿一卒)'이란 명문이 새겨져 있다. 외용기로 쓰인 금동 항아리는 낮은 굽이 달린 몸체와 보주형 손잡이가 달린 뚜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안쪽에 녹유리 항아리를 감쌌던 천의 흔적이 남아 있다. 유골을 유리 용기에 봉안하고 천으로 용기를 감싼 뒤 외용기에 넣은 방법은 불사리의 봉납 방식에 따른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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