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남색과 연한 청록색의 2가지 색지가 좌우로 이어져있고 한 수의 와카(일본의 고전 시)가 흘림체로 쓰여있다. 종이의 여백으로 인해, 색의 대조가 더욱 매력적으로 보인다. 시의 내용은, 첫 번째 종이(남색)의 상구가 ‘와레미테모 히사시쿠나리누 스미노에노(내가 보아도 많은 시간이 흘렀다)’, 두 번째(청록색) 종이의 하구가 ‘기시노히메마쓰 이쿠요에누라무(바닷가의 노송은 몇 대가 이어져 오고 있을까)’다. 와카에 자주 등장하는 명소이며 유구의 세월을 상징하는 셋쓰쿠니 스미요시 지역 해안가의 소나무를 읊은 이 시는 『고금와카집』 제17권에 실린 와카의 한 수다.
이 계색지는 일본 헤이안시대의 고필을 대표하는 명품으로서 사랑받아, ‘슨쇼안색지’와 ‘마스색지’와 함께 ‘일본 삼색지’로 불려 왔다. 이 외에도 일본에는 30점 남짓한 ‘계색지’가 전해지며, 일부는 방을 꾸미는 족자로 만들어졌고, 여러 가지 명필을 모은 모범첩 (필체의 견본이나 감상을 위한 모음집)에 붙여진 형태로 전해지기도 한다. 그것들은 본래 색색의 용지를 점엽장이란 방법으로 제본하여 만든 제목 미상의 와카집 사본이었다. 소개하고 있는 자료는 그중 3쪽의 단간으로, 청록색의 가로로 긴 한 장이 좌우 2쪽에 해당한다. 다만 통상적인 점엽장 책자에서는 보통 종이 한 장의 양면을 모두 사용해 문자를 적지만, 소개하고 있는 <계색지>의 경우는 한쪽 면에만 묵서가 있으며, 이것은 점엽장 중에도 원초적인 형태로 보인다. 게다가 이 자료 <계색지>는 상구 및 하구를 각각 다른 쪽에 쓰고 있는데, 한쪽에 반 구절밖에 적혀 있지 않다고 하여 에도시대에는 ‘반구절(半句切)’이라는 명칭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처럼 용지를 양껏 사용하는 방식은 예기치 않게 본래의 책자가 분할되었음에도, 흘려 쓰기에 따른 여백의 효과를 충분히 끌어내어, 보는 이의 호평을 받았다.
가나 문자를 끊임없이 연달아 쓴 점, 완급이 자유자재인 붓놀림 또한 이 자료의 매력이다. 이 작품은 에도시대 전기 고미즈노 천황이 감상하였을 당시, 기노 쓰라유키(?-945)의 친필이라는 감정을 받았다. 한편에선 이 <계색지> 필자가 오노노 도후(894-966)라고도 전해진다. 실제 필자는 명백하지 않으나 이 필적은 한자를 모체로 하는 가나문자가 현재 일본에서 쓰이는 히라가나로 변해가는 과도기 양상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하다. ‘와레미테모’의 ‘테,て(帝)’와 ‘수미노에’의‘에, ゑ(盈)’는 초서체 한자의 모습을 간직한 ‘소가나’라 불리는 서체로, 자모(가나문자의 기원이 된 한자) 선택에서는 고풍스러운 경향이 보인다. 한편, ‘히사시(ひさし)’‘누(ぬ)’‘키(き)’ 등의 모습은 현재의 히라가나와 거의 차이가 없는데, 이는 11세기 중반쯤에 완성되는 ‘온나데’라는 서체다. 이러한 가나문자의 특징으로 보아, 이 <계색지>는 10세기 후반부터 11세기 초기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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