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문화재다이도코로 앞 삼층 망루 터(제2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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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란제
  • 메이지4년(1871)
  • 도쿄국립박물관

태정관의 소사였던 니나가와 노리타네(1835-82년)가 사진사인 요코야마 마쓰사부로와 화가 다카하시 유이치의 협력으로 메이지4년(1871)에 제작한 구 에도성의 기록 사진집이다. 촬영 기법은 습식 콜로디온법으로, 이 방법은 다게레오타이프와 카로타이프 등 초기 기법과 비교할 때, 감광 능력이 뛰어나고 취급도 간편했다. 인화지는 계란지를 사용하였는데 화상이 선명하고 보존성도 좋아 당시 사진가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이 사진첩에도 역시 제31도(圖) 「혼마루주바코야구라나카노와타리몬도」의 좌단 아래쪽에 형압된 「No68BFKRives」를 통해 프랑스제 계란지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상태는 두꺼운 대지(臺紙) 2매를 가로로 연결하여 붙이고 4면의 독립된 장으로 만들었으며, 전부 16장, 64면을 겹쳤다. 그리고 각 면에 1장씩 4개로 나뉜 판의 인화 사진을 붙이고, 거기에 이 32매로 이루어진 대지를 감싸듯 교차하여 붙인 표지를 붙여 앨범 같은 모양을 갖추었다. 사진에는 니나가와가 쓴 제1도부터 제64도까지 먹펜으로 순서가 기입되어 있고(성안 중심부부터 주변의 각 미쓰케를 향해 중요한 지점을 망라) 중요한 건물과 장소에 대해서는 같은 글씨로 사진 위쪽에 주기를 달았으며, 모든 사진에는 다카하시 유이치의 담채가 포함되어 있다. 또한 면지의 앞과 뒤에 「도쿄도」,「도쿄성도」 지도 2매가 풀로 붙어있는데 「도쿄성도」에는 「메이지4년 신미사생지(辛未寫生之) 니나가와노리타네」라는 관기(款記)와 「미야지(니나가와의 구 성) 노리타네」라는 단곽주방인(單廓朱方印)이 찍혀있다. 촬영에 이르게 된 취지는 면지에 붙어있는 니나가와가 태정관에게 보낸 사서(伺書) 부본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파괴되지 않았을 때 사진으로 그 형상을 유치」와 「후세에 이르기까지 또한 박람의 일종」이라는 기록이 있다. 더욱이 니나가와, 요코야마, 다카하시는 다음해인 메이지5년에 나라와 교토의 옛 사찰 및 쇼소인의 보물 조사(임신년 조사)를 실시하고 다수의 기록 사진을 남겼다. 이는 사진첩 제작을 통해 사진에 의한 기록 보존 방법이 문화재 보호에 효과가 있음이 증명되었다 할 수 있다. 즉 본 사진첩의 제작은 원래부터 대상이 문화재로서 인식되었으며, 그 기록에 사진을 재빨리 포함시킴으로 일본 사진 역사 상 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근대 문화재 보호의 원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2000.06.27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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